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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유증광사마방목(乙酉增廣司馬榜目)    
    을유증광사마방목(乙酉增廣司馬榜目) 1705년(숙종 31) 생원시(生員試)와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사람들의 명단으로 교서관(校書館)[芸閣]에서 1706년에 간행한 것이다. 시험은 숙종(肅宗)의 즉위 31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행된 것이다. 이 방목은 이원익의 5세손 이인복의 것으로 2등 18인에 입격한 것이다. 방목의 내용에는 자, 출생연도, 본관, 주거지, 부친의 직함과 성명, 부모의 생존여부, 형제[?行] 등이 기록된다. 그 외에 시험관, 시험장소, 시험문제도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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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언(記言)    
    기언(記言) 17세기 허목(許穆, 1595-1682)의 시문집이다. 전시면은 연보 부분으로 이원익의 아들 완선군(完善君) 이의전(李義傳)의 장례에 다녀왔다는 구절이다. 허목은 이원익의 손서(孫?)이며 이의전은 그의 장인이다. 허목은 ≪오리집≫을 간행하는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원익 집안의 많은 비문(碑文)을 짓는 등 밀접한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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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사집(白沙集)    
    백사집(白沙集) 오성대감으로 널리 알려진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시문집이다. 이항복은 본관이 경주(慶州), 자가 자상(子常), 호가 필운(弼雲), 백사(白沙)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군되었기 때문에 이항복이나 백사보다는 오성대감으로 널리 알려졌다. 1590년 정철(鄭澈)사건의 처리를 태만하게 하였다는 대간(臺諫)의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했으나 대사헌 이원익(李元翼)의 적극적인 옹호로 진정된 바 있다. 이 문집은 장유(張維, 1587∼1638)에 의해 중간(重刊)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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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음집(漢陰集)    
    한음집(漢陰集)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의 시문집이다. 이덕형은 본관이 광주(廣州), 자가 명보(明甫), 호가 한음(漢陰), 시호가 문익(文翼)이다. 어렸을 때 이항복과 절친한 사이로 기발한 장난을 잘하여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글씨에도 뛰어났다.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로 영창대군(永昌大君)이 강화도에 유폐되자 당시 영의정 이덕형은 은전을 베풀자고 주장하였고 이로 인하여 크게 비판받았다. 이때 이원익은 상소를 올려 그를 적극 옹호한 바 있다. 포천의 용연서원(龍淵書院), 상주의 근암서원(近巖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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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애집(西厓集)    
    서애집(西厓集) 서애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시문집이다. 1633년(仁祖 11)에 아들 진(袗)이 합천군수(陜川郡守)로 재직할 때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유성룡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門人)이며 오리 선생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이 되고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도학(道學)과 문장(文章)과 덕행(德行)을 겸비하였다. 시호(謚號)는 문충(文忠)이며 안동(安東)의 병산서원(屛山書院), 호계서원(虎溪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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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선생문집(梧里先生文集)    
    오리선생문집(梧里先生文集)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시문집이다. 1687년(숙종 13)경 증손 이상현(李象賢) 및 문인 조경(趙絅), 허목(許穆) 등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고, 이후 1731년(숙종 31)경 4세손 이존도(李存道)가 이서우(李瑞雨)의 서문과 姜영(木英)의 발문을 받아 속집과 함께 중간하였다. 이 책은 중간본으로 종택에 소장되었던 것이다. 전시면은 유성룡(柳成龍)에게 보낸 편지로 사직을 말리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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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공내외자손보(昭剛公內外子孫譜)    
    소강공내외자손보(昭剛公內外子孫譜) 태종(太宗)의 12번째 아들 익령군(益寧君)의 내외후손의 가계를 정리한 족보이다. 1725년(영조 1) 외예손(外裔孫) 강박(姜樸, 1690∼1742)의 서문과 1831년(순조 31) 姜世綸 서문이 있는 점으로 보아 1831년경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전시면은 소하동(所下洞) 일대 지리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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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갈문(先祖碣文)    
    선조갈문(先祖碣文) 이원익의 선조이래의 여러 비문의 탁본첩(拓本帖)이다. 탁본의 대상인 비문(碑文)이 현재 마모가 심해서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운데, 이 탁본첩은 글자체를 복원하는데 도움이 된다. 전시면은 이원익이 짓고 쓴 글이므로 그의 서체를 이해하는데도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