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이 된지 40년이 지나도록 이원익 선생은 비바람 조차 가리지 못하는 2칸 초가에서 지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인조는 1630년 (인조 8) 집을 하사하고 신화와 백성들로 하여금 이원익의 청렴하고 간결한 생활 자세를 보고 느끼게 하도록 하였는데, 이때 하사한 집이 관감당(觀感堂) 입니다.
이원익 선생이 말년을 지내고 서거했던 관감당은 1637년 병자호란으로 정당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1694년 서거 60주년 (숙종 20)에 중수되고, 다시 1916년 10대손 이연철(李淵哲)에 의해 중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화롭게 사치를 부리지 않고, 소소하고 담백하게 꼭 필요한 공간으로만 건립된 관감당은 이원익 선생의 기질과 너무나 닮아있습니다. 마당에는 측백나무를 심고 탄금암에서 거문고를 켜며 달래기도 하고 풍류를 즐기던 사나이의 삶과 재상으로써 평생을 강직하게 보냈던 삶의 응축이 담겨있는 곳이 바로 관감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