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영우는 오리(梧里) 이원익의 영정(影幀)을 모신 집(影宇)이란 뜻이다. 집안의 관혼상제 등 중요한 대사가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인사 드리는 곳으로 산천정기가 스며드는 첫 길목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693년 (숙종 19), 인조가 하사한 관감당의 옛터에 정면 1칸과 2칸으로 건립 된 오리영우는 감실에 다른 사당과는 달리 신주 대신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근곡(芹翁) 이관징(李觀徵, 1618~1695)은 “1693년(숙종 19) 10월 이원익 선생이 말년에 현 광명시 소하동으로 물러나와 사실 때 인조가 하사한 집인 관감당 옛터에 이 사우를 건립한다.” 라는 내용을 담은 현판을 썼습니다. 1647년 병자호란으로 소실 된 이후 이원익 서거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관감당을 중건하면서 오리영우도 함께 건립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