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의 가장 큰 책임은 대를 잇는 것과 제사입니다. 아들 넷을 낳았으니 한 가지 시름은 놓았지만 회갑이 넘은 종부에게는 아직도 제사의 책임은 남아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음식 맛과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 백지와 유기, 목제기를 사용하고, 오리정승의 제사(음력 10월 24일)에는 손톨추위(10월 20일)에 우물 물을 떠서 새벽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고집스럽던 제사 풍속도 세월의 흐름에 점점 간소해졌지만 충현박물관에는 여전히 300년 넘게 이어온 제가 용품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제상(祭床)
44.0×126.0×98.5cm
오리영우에서 제물 올리던 제상. 오리영우(梧理影宇)가 건립된 1694년 이후부터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로 폭이 좁아 하나로는 진설이 힘들어 같은 크기의 제상과 이보다 약간 작은 준소상이 더 준비 되어있다. 대대로 이원익의 제사는 제물이 간소했는데, 1995년부터 제수는 모두 준비하더라도 주과포혜(酒果脯醯)만 올리고 있다. 제사에 사용될 음식은 생선이나 육고기, 계절과일은 제외하고, 대부분 종가에서 농사지은 것-잣, 호두, 대추, 밤, 감과 곶감, 은행 등-들로 준비한다.
향상(香床)과 촛대
향상 22.5×39.5×38.4cm, 촛대 길이 56.5cm 받침지름 16.0cm
이원익 제사에 사용했던 향상과 촛대로 1694년 이후부터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술을 꿴 연주(聯珠)모양의 촛대 기둥은 용이 서린 형상을 추상화한 것이라 하여 와룡(臥龍)촛대라 불리며 제상에 놓이고, 향상에는 향로와 향합이 놓인다.
제기지궤(祭器之櫃)
34.0 × 63.5 × 44.5cm
종가 안방 다락에 보관되어 있던 제기함. 목제기를 담아두던 반닫이로 앞면에 '祭器之櫃'가 음각되어 있고 제비추리 앞바탕과 감잡이, 귀장식 등이 모두 무쇠로 되어있어 단단하고 묵직한 인상을 준다.
제기는 조상을 위한 그릇이기 때문에 사당의 제기고(祭器庫)나 특별히 만든 나무 궤에 보관하고 남에게 빌려주거나 팔지 못한다. 특히, 종가의 제기는 종가의 소명이며 유형적 상징물로서 문중의 역사와 경제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일반 그릇과 섞이지 않도록 따로 보관했다. 못쓰게 된 제기는 땅에 파묻고 다른 용도로 쓰지 않는다.
목제기접시
입지름 17cm 바닥지름 8.8cm 높이 7.9cm
옻칠 목제기 접시로 운두가 높고 굽이 낮다. 굽 바닥면에 "二果(이과)"로 묵서 된 걸로 보아 종가에서는 과일용 접시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타다른 목제기에도 ‘刑(형염)’이라는 묵서가 있는 것으로 영당이나 서원 향사에 쓰던 제기로 추정된다.
반기(飯器)
입지름 19.5cm 바닥지름 12.6cm 높이 20.7cm
운두와 굽이 매우 높은 반기. 굽바닥에 ‘二飯(이반)’이란 글자가 묵서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반기(飯器)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당이나 서원 향사에 쌀을 담았던 제기로 추정된다.
옻칠제기
제기 大 19.3 × 20.9㎝ / 제기 小 13.7 × 10.7㎝
옻칠제기는 종가에서 몇 대를 거쳐서 사용하던 것으로 탕을 담기도 하였다. 지금은 금이가고 갈라져 사용할 수 없지만 종가에서는 조상의 족적 다음으로 애지중지 여기는 기물이다.
백자제기(白磁祭器) 접시
좌 높이 6.8cm 입지름 15.7cm 바닥지름 9.7cm / 중 높이 6.5cm 입지름 15.3cm 바닥지름 9.4cm / 우 높이 6.3cm 입지름 13.9cm 바닥지름 9.0cm
삼색나물과 과일, 산자, 강정 등 고임새 올린 제기. 나물은 무, 고사리, 숙주나물을 각각 한 접시씩 담고, 세 나물을 같이 담아낸 접시를 하나 더 진설했다. 고임새 할 때는 한지로 접시면을 팽팽하게 싸고 고임새 높이만큼 쌀 넣은 한지기둥을 만들어 대추, 잣, 호두를 붙인다. 대추는 손질하기 쉽게 약주술에 담가 아랫목에다 불려서 사용하고, 은행은 구슬처럼 실에 꿰어 한지 기둥에 둘러 붙인다. 이틀 동안 찬물에 담가놓은 밤은 집안 어른들이 둘러 앉아 생율로 치고 오목한 접시면을 한지로 평평하게 만든 접시에 한 층씩 올린다. 이때 밤은 각 층마다 한지를 발라야 울퉁불퉁하지 않게 고일 수 있다.
산자, 강정, 약과는 밤과 같은 방법으로 고여 내고 배나 사과는 부피가 컸기 때문에 접시 중 가장 큰 것에 올리고, 은행이나 밤처럼 부피가 작은 제물은 작은 접시에 올렸다. 고임새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 제사 전날 늦게까지 준비해야 했다.
향로(香爐)와 향합(香盒)
향로 높이 12.4cm 최대지름 15.8cm 바닥지름 9.7cm / 향합 높이 7.7cm 입지름 9.0cm 바닥지름 5.8cm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하면 제사를 행하는 사당에서는 “각위마다 祭床(제상)을 놓고 그 위에 향로는 서, 향합은 동으로 하여 놓는다.”라고 하였다. 분향 절차에 있어서 향로에 향을 올림으로써 하늘의 신령을 맞이하였다.
종가의 향로는 귀가 달리고 배가 부른 형태로 뚜껑을 덮기 용이하게 전이 넓적하고 평평하게 만들어 졌다. 굽은 비교적 높은 편으로 조선시대 향로의 일반적 특징을 보이나, 한 쪽 귀가 떨어지고 뚜껑도 남아있지 않다.
편틀(編臺)
23.0×23.0×20.7cm
정사각형의 떡틀. 종가에서는 편을 고일 때 정방형으로 올리지 않고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넓고 높게 장방형으로 담는다. 3-4등분 한 편을 바닥에 올리고 위로 갈수록 아래편보다 조금씩 크고 넓게 잘라 올리면 사다리꼴로 완성된다. 이렇게 올린 편은 맨 위 가장자리에 웃기로 장식 하고 주악으로 고임새를 마무리한 뒤 한지로 잘 싸두었다. 새벽에 제를 올리기 때문에 그때까지 편이 마르지 않도록 한지로 싸둔 것이다.
웃기는 찹쌀가루로 반죽해 번철에 밤채와 대추채, 국화 잎사귀로 고명을 얹어 얇게 부쳐 마름모꼴로 썰어 편의 가장자리를 장식했고, 그 안에 팥소를 넣은 송편모양의 주악을 기름에 튀겨 서로 붙지 않도록 설탕에 재웠다가 편고임새를 장식했다. 4대조 이존도의 유서에는 웃기로 화전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나 후대에는 화전은 만들지 않았다.
적틀(炙臺)
15.0×21.5×6.5cm
적틀은 두부적(素炙), 육적(肉炙), 어적(魚炙)을 올리던 제기로 형태는 편틀과 유사하지만 직사각형 그릇이다. 적으로 쓸 두부는 두툼하게 썰어 노릇하게 짖어낸 후 맨 밑에 담고, 잔칼질 한 소고기는 양념에 재운 후 오그라들지 않게 꼬챙이를 끼워 익혀낸 두부적 위에 올린다. 마지막으로 숭어적을 올리면 된다. 숭어는 비늘과 속 내장을 제거하고 속안에 무를 박아 모양을 만든 후 양념장으로 지져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