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대가 함께 살아왔던 우리네 조상들의 부엌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박물관입니다. 금이 가고 이가 빠진 사기그릇, 살짝 일그러진 양은냄비, 놋그릇, 부지깽이 등이 선반 여기저기에 쌓여 있는 부엌, 종가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아궁이의 불은 꺼져 저녁이면 굴뚝연기를 볼수 없지만, 그들을 먹고 마시게 했던 그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유물 여기저기에는 흠집이 나고 볼품없이 변한 것도 있지만 후손들의 지극한 정성이 지금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삼층찬장(三層饌欌)
52.5×116.5×168.7cm
종가부엌 마루에 있었던 찬장. 종가에는 사기와 놋그릇이 많아 무거운 식기들을 넣고, 음식과 다른 기물들을 수납해도 견딜 수 있도록 재질이 치밀하고 견고한 목재로 만든 찬장을 사용했다. 찬거리보다는 그때그때 쓸 콩이나 보리, 잡곡류를 조금씩 보관하거나 유기그릇, 막사발등을 담아두었다. 찬장은 일반적으로 찬방이나 대청에 놓여 사랑방이나 안방 가구에 비해 견실성이 뛰어나다. 재질과 짜임이 단단하고 물건을 내부 깊숙이 수납할 수 있도록 여닫이와 빼닫이 서랍을 달았다. 1층부터 3층까지 반복된 짜임을 다리부분의 풍혈장식과 환(環)고리와 환들쇠 손잡이로 단조로움을 상쇄시켰다.

뒤주
71.8 × 109 × 103cm
잡곡을 보관하던 저장고로 쌀 3가마니 이상이 들어간다. 느티나무와 소나무 판재로 만들어 곡물이 습기로부터 변질되는 것을 막고, 통풍과 해충, 쥐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다리는 튼튼하고 높게 제작했다. 앞바탕에는 무쇠자물쇠가 달려 있다. 13대 종부가 시집와서 안마루 북쪽에 놓고 사용했는데, 뒤주의 키가 크고 깊어 쌀이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까치발을 딛고도 전부 퍼내기 어려웠다.

옥바리와 합(盒)
옥바리(좌) 전체높이 13.5cm, 입지름 11.6cm, 바닥지름 6.8cm, 뚜껑높이 5.3cm, 뚜껑지름 12.2cm
합(우) 전체높이 6.2cm, 입지름 10.3cm, 뚜껑높이 1.7cm, 뚜껑지름 10.8cm
옥바리는 여자용 밥그릇으로 종가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주로 사용했다. 뚜껑이 있는 옥바리는 밑이 좁고 배가 부르고 위쪽이 좁다. 합은 남자용 그릇으로, 밑은 평평하고 위로 약간씩 좁아지며 뚜껑도 평평한 모양이다. 종가에서는 옥바리에 물을 담아 자리끼로 쓰기도 했는데, 스테인리스 도금 그릇의 사용이 늘면서 13대 종부 때부터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스테인리스도금 놋그릇
주발(좌) 입지름 13.0, 바닥지름 6.4, 높이 11.0, 뚜껑높이 3.1, 뚜껑지름 13.5cm
옥바리(우) 입지름 10.6, 높이 13.8, 바닥지름 6.9, 뚜껑높이 5.0, 뚜껑지름 13.5cm
갓 시집온 13대 종부가 유기그릇을 닦아 사용하는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대고모님이 동대문 밖까지 가지고 나가 스테인리스 도금한 주발과 옥바리. 주발은 남자, 옥바리는 여자들 밥그릇으로 어린 종부를 아끼고 사랑했던 마음에 대고모님은 처음 스테인리스 그릇이 나왔을 무렵 몇 벌의 놋그릇을 보자기에 싸가서 손수 해오셨다. 종부는 식구가 단촐 하고 연탄 때던 시절이라 유기보다 스테인리스 도금 그릇을 더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연탄으로 난방을 바꾸고 풍로로 조리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로는 연탄가스에 약한 놋그릇보다 양은과 스테인리스를 더 자주 사용했다.

나무과반
지름 16.8cm 바닥지름 10.2cm 높이 4.9cm
주칠 나무 과반으로 이음새 없이 통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일반 접시만큼 작고 가벼워 13대 종부가 마실 오신 웃어른들께 한과나 다식, 사탕 등 간식거리를 담아서 드리는데 늘 사용했다.

다식판(茶食板)
33.2×5.2×2.6cm
다식판은 다식이나 약과 재료를 박아내는데 사용하던 틀로 아래 위 두 쪽이 나뉜 틀형 다식판이다. ‘壽’자를 원형으로 도안한 문양과 물고기문이 장수와 부귀를 빌고, 연꽃과 나뭇잎, 기하문 등이 어우러진 다식판은 크기가 작아 단독 문양을 섬세하게 표현하기 좋다.
13대 종부는 제사나 백일, 돌 등 잔치 음식에 꼭 다식을 만든다. 주로 흑임자와 콩, 송화, 삶은 밤을 다식재료로 썼는데, 고소한 깨다식이 가장 인기가 좋다. 밤은 삶고, 깨와 콩은 볶아서 절구에 빻아 얼개미에 친 고운가루를 꿀로 반죽하면 되지만, 송화는 반복된 작업을 여러 번 거쳐 가루를 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번거롭고 만들기 어렵다. 요즘은 송화대신 농사지은 밤으로 만든 다식을 손자들 간식으로 주고 다과상에 올린다.

버들고리(籃)
45.0×35.0×20.0cm
종가의 혼사나 제사 등 큰일을 치를 때 떡이나 엿을 담아두거나, 사돈댁에 이바지음식을 보낼 때 사용한 고리상자. 고리 가득 음식을 담아주면 아랫사람들이 등에 지고 가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사돈댁 등에 전해주었다.
고리상자는 동고리, 떡고리, 버들고리, 고리짝 등 지역마다 명칭이 다양하며, 고리버들을 오려 상ㆍ하판을 엮고, 대나무로 가장자리 테를 끼워 만든 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함지박
지름 33.6cm 높이 9.2cm
잔치에 떡을 담아 품앗이로 썼던 전함지. 종가의 함지박은 크기에 따라 용도가 다른데, 작은 함지는 떡이나 엿 등 음식을 담아 두고, 큰 함지박은 쌀가루 빻아 물 내릴 때 사용했다. 함지는 통나무를 크기에 맞게 베어, 흐르는 물에 오랫동안 담갔다가 건조시키기 때문에 잘 터지지 않고, 칠을 해서 방수, 방충은 물론 음식의 부패를 지연시키기 때문에 부엌살림 곳곳에서 사용됐다. 제사 때는 마른 떡가루를 담거나 김장에는 김치에 들어갈 속 양념, 무채나 파 등을 하나 가득 썰어 담아두었다. 그러나 높은 활용도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가 1960년대 초반까지만 사용하고 가벼운 양은이 나온 뒤로는 그 사용이 점차 줄어들었다.